다니엘 12장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샬롬~
 
다니엘 12장을 자세히 살펴보려 합니다
성경에 장과 절은 본래부터 있던것은 아닙니다. 후에 편리성을 도모하려 도입된것이지요
다니엘 11장과 12장은 떨어진 문서가 아닌것입니다
각장에서는 기록 연대가 나오지만 12장에서는 1절에 기록 연대가 나오자 않고 있지요
그리고 2장부터 7장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고 1장과 8장부터 12장은 히브리어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1260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아닌것을 알수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11절의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와 마테복음 24장 15절의 다니엘이 말한바 라고 적은 부분이 같습니다
15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절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즉 이것은 유대에 관한것이지 열방에 관한것은 아니라는것 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12장은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한것 입니다
AD 70년 유대전쟁은 66년에 5월에 발발하여 70년 9월에 종료한것으로 역사 기록에 나오지요

추정하면
유월절 행사에 유대인이 몰려들었고 그로부터 시점이 되어1290일간 포위공격 되었으며
시작시에는 네로의 통치시기이고 중간에 네로가 죽고 베스파시우스가 로마 황제로 황위를 받을로 로마로 갈때 일시적으로 포위는 풀리고 그때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 모두 성에서 나갔던것입니다.
이때부터 유대교와 완전한 결별을 하게 된것이지요
유대교는 굘사항전을 하러 성으로 들어가는데 기독교는 모두 탈출을 하였으니 웬수지간이 될수 박에는 없지요
 
계시록 1260과 다른 1290은 실제로 3년 7개월이 아닌 3년 6개월입니다. 유대력은 음력으로 3년에 1번 윤이이 들어가 37개월이 3년이고 이후 6개월이 더해져 43개월이 됨니다.
 
즉 66년 유월절부터 70년 나팔절 까지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이것은 로마군의 공성탑이 완성되어진것 이지요 이후 45일간의 전투에서 에루살렘은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되는것 이지요
 
다니엘 12장 7절의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는 AD 26년 빌라도가 총독으로 부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에 달리신 AD 30년 까지의 기간을 기록한것으로 보아야 할것입니다
 
결론은 요한계시록11장과 12장의 의 마흔두달과  1260일과 는 다른 시대의 사건일것 입니다. 그 시기는 요한이 기록한 AD 100년 정도 이후에서 미래까지의 어느시가에 관한 것임면 날이라기 보다는 념도로 보는것이 타당하다고 생각 됨니다
 
예로 AD 690년 알악사 사원에서 1260년을 더하면 1950년으로 유대인 귀환법이 제정된 해입니다.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로마교황청의 1798년 까지를 예언한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연구 할것은 1335 일과 창세기 노아방주 식양 길리 300 광 30 고 50 에서 0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뜻하는 1을 앞에 세우면 1335는 노아의 방주로도 볼수가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21장의 153마리 생선으로 본다면 1335의 겹치는 33을 하나로 본다면 153이 되지요 그럼 153도 노아의 방주의 숫자로 보여집니다, 일명 작전 암호명 같은것 이지요
 
 
 
 
 
 
 
[다번역성경찬송]

다니엘 12장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다니엘 12장
1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12. 기다려서 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24장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포위와 분열마침내 예루살렘은 사방에서 포위되었고, 유대군이 장악한 지역은 유다 동부 일부와 마케루스, 마사다, 헤로디움뿐이어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68년 6월. 네로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베스파시아누스에게 들어왔습니다. 이 일로 예루살렘 공격은 잠깐 중단되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곧장 티투스를 보내 새 황제 갈바에게 서약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티투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갈바는 살해되었고, 티투스는 도중에 되돌아옵니다.
지휘관의 군장 차림을 한 티투스
이어서 로마의 황제는 오토, 다시 비텔리우스로 바뀌었고, 이 와중에 베스파시아누스는 시리아 총독 무키아누스의 지지를 받아 황제로 추대됩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를 풀어둔 뒤에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예루살렘 포위는 티투스가 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기, 로마군의 공격이 없자 이번에는 예루살렘 내부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납니다. 요세푸스 자신도 이를 가리켜 '고질병'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반란을 주도한 열혈당원들도 분파가 다르고, 지역도 다른데 예루살렘 성 안에 한데 모여있으니 내분이 안 날리가 없는 일이지요. 적이 당장 공격해온다면 단결했겠지만...

게다가 유대인들도 강경파, 온건파로 나뉜데다가 채권자, 채무자간 갈등, 계급갈등도 언제나 그랬듯이 항상 남아있었기 때문에 분열의 씨앗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결국 내분 끝에 기스칼라의 요한이 이끄는 파벌이 성전을 장악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됩니다. 그리고 이 싸움 와중에 식량창고가 불타서 농성에 필수적인 아까운 식량을 상당부분 태워먹었습니다 -_-; 포위 시기 예루살렘 내부의 참상은 요세푸스가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70년. 티투스 지휘 하의 로마군은 마침내 총공격을 개시합니다. 로마군은 정석대로 도시를 공격하였고, 유대 방어군도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 로마군의 공성탑은 유대 방어군에게 최대의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 탑은 성벽보다 높았기 때문에, 로마군은 유대군의 무기가 닿지 않는 곳에서 성벽 위의 유대 방어군을 공격해 많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로마군의 공성기
5월 25일. 마침내 로마군의 강철 '숫양'이 첫번째 성벽을 뚫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위치를 버리고 두번째 성벽 안으로 후퇴했고, 성벽을 돌파한 로마군은 성문을 열어 전군을 들여보냈습니다.

이후 전투는 넓은 지역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성벽에서. 알렉산드로스 얀내우스의 무덤 등에서 처절한 혈투가 벌어졌고, 유대인 전사들은 성문으로 나와 로마군을 기습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제 2성벽이 로마군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티투스는 유대인들에게 잠시 항복할 시간을 주었으나 유대인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러자 티투스는 다시 공성 준비를 하는 한편 요세푸스를 파견해 동족들을 설득하게 합니다. 요세푸스는 간곡하게 설득했으나 유대인들은 욕설로 답했고, 일부는 창을 던지기도 하였습니다.

로마군은 방어군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해 붙잡힌 포로들을 성벽이 보이는 곳에서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포위기간이 길어지면서 탈출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났는데, 그들도 붙잡히는대로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위협도 저항군의 항전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8월. 마침내 성전이 함락됩니다. 로마군은 안토니아 요새 공격에 몇차례 실패한 후에 기습공격을 통해 요새를 손에 넣었습니다. 싸움의 와중에 성전이 불에 탔습니다. 병사들은 황금 독수리 군기를 성전 동문 맞은편에 꽂았고, 승리의 환성을 지르며 티투스에게 '임페라토르'의 찬사를 바쳤습닌다.

이후 로마군은 신속하게 남아있는 유대 저항군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았고, 반란에 가담했던 주민들을 처형했습니다. 나머지는 검투사나 노예가 되었습니다. 티투스의 명령에 의해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는 세개의 탑과 서쪽 성벽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철저히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마사다 항전
예루살렘을 빠져나간 저항세력은 사해 남서쪽의 마사다 요새를 최후의 항전장소로 택했습니다. 곧 실바가 이끄는 로마군이 요새를 철저히 포위하였습니다.

로마군은 투석기로 돌을 쏘아올리는 한편, 공성탑과 공성퇴를 동원해 요새를 공격했습니다. 포위 두세달만에 로마군은 공성로 건설을 완공합니다.

유대군은 나무로 된 장애물을 설치하였으나 로마군은 화공으로 장애물을 태워버렸습니다. 이제 로마군은 승리를 확신한채 공격을 멈추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요새에 돌입한 로마군이 발견한 것은 남녀 960명의 시신 뿐이었습니다. 아이 다섯과 여자 둘만 살아남았습니다.

이상이 요세푸스의 기록이나, 고고학적인 조사 결과 집단자살의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단지 30여개의 유골만이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학자들은 요세푸스가 유대인의 결의를 높이기 위해 이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 혹은 그의 친 로마적 성향을 고려하여 로마군에게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지우지 않기 위해 이런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이 이야기는 창작이라 하더라도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방어군을 지휘하던 엘르아자르의 연설은 유명한 연설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여인들이 치욕을 당하지 않고 죽을 수 있으며, 아이들도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먼저 우리 손으로 이들의 목숨을 끊은 후에 우리 자신도 서로에게 고귀한 죽음을 선사하여, 자유를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수의로 삼기로 하자!" (<유대전쟁사>6.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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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
2.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요한계시록 11장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다번역성경찬송]

요한계시록 13장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요한계시록 12장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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