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44년에 느헤미야 성벽이 52만에 완공되었울까? 에스더서는 BC 480년이 배경인가?
앞장에서 BC 583년에 3차 포로에서 느헤미야가 포로되어갔다
당시 나이가 7살인데 부모와 같이 따라서 포로가 되었다면
BC 583 - BC 444 + 7 = 146세
느헤미야가 146세에 성벽쌓기 지휘햇을까요? 아닙니다
역사와 성경해석 세계사의 오류입니다.
느헤미야가 146세에 성벽쌓기 지휘햇을까요? 아닙니다
역사와 성경해석 세계사의 오류입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유대전쟁사를 기록한 요세푸스의 기록에의 오류입니다.
AD 73년 종료된 마사다 전투까지를 기록한 요세프스 가 600년전 바벨론 패망의 기록을 성경을 잘못해석해서 적은 기록이 오류의 시작 이지요
요세푸스는 벨사살을 바벨론 마지막왕으로 나보니두스 의 아들이라 기록햇습니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바벨론 멸망의 왕을 누구라 적지 않고 있습니다 그냥 어떤 여왕의 아들로 적고 있지요
헤로도토스는 BC 490년 출생으로 이전 150년사는 신화와 비슷한 이야기로 적고 있습니다 BC 490년이후 페르샤 전쟁사는 역사로 정리되고 기록되어서
BC 490 년 마라톤평원 (다리오1세 = 아닥사스다 = 아르타 크세르 크세스 )
BC 480 년 300용사 ( 크세르 크세스 1세)
BC 480 년 9월 살라미스 (크세르 크세스 1세)
이후 펠레폰네스전쟁까지 기록되고
크세노폰이 정리기록한 키루스의교육에 바벨론 함락이 기록되지만 헤로도토스에 가려 세계사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크세노폰은 고레스가 메데와 전쟁해서 점령한것으로 적지않고 있습니다.
크세노폰은 고레스가 메데와 전쟁해서 점령한것으로 적지않고 있습니다.
크세노폰은 페르샤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했던 장군으로 그가 쓴 키루스(고레스)교육 이 알렉산더로 하여금 세계정복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알렉산더가 전쟁중에 꼬 가지고 다니며 본책이지요.
요세푸스는 600전 역사를 적으면서 성경 다니엘서를 잘못해석 한것입니다.
그도 어떠한 고문서를 참조 했을수도 있지만 그역시 잘못된 해석으로 적은 기록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역사가들이 참고하는 중요문서로 인정되지만 그가 참전한 기록일뿐이고
바벨론 패망을 요세프스로 기준 할 수는 없습니다
요세프스는 바벨론 마지막 왕을 벨사살로 그가 잔치중에 손목이 나와 벽에 쓴것을 환상으로 보았다고 다니엘5장을 해석해서 기록하고 있지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다니엘5장
다니엘5장
18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 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의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의 영광을 빼앗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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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78 년 다니엘 5장21절에 느부갓네살이 짐승 같이 되어 왕의 업무를 볼수 없기에 18장에 왕에 부친 느부갓네살 즉 느부갓네살의 아들인 벨사살이 대리 섭정왕이 된것입니다. 다니엘 5장은 벨사살이 3년 쯤에 막나가는 잔치중에 일어난 실제 사건입니다. 다니엘의 38세 쯤
벨사살왕 그는 그날밤 다니엘에게 금사슬을 걸어주고 자신의 침실에 들어 너무 두려운지라 아무도 못들어오게 경비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만약에 나와 같은 사람이 와도 절대로 들이지말고 암호를 못대면 죽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방에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않자 잠시 몰래 밖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다 경비병이 묻던 암호를 대지못하고 내가 벨사살 왕이다 했지만 그래도 죽이라고 명령을 했으므로 침실 경비병에게 사살됨니다. 자살골이지요
이후 왕위는 느부갓네살의 왕비 아미티스의 오빠 메데의 다리오62세 ( 아하수에로) 에게 넘겨집니다. 느부갓네살과 처남 매부 지간이었던 사이니까요. BC 576에 일입니다. 다니엘 6장입니다.
그러니까 BC 576에 일어난 사건을 539년으로 기록하고 나보니두스의 아들로 만들어 소설을 쓴것이지요. 달의 신을 믿는 나보니두스가 마르둑신의 축제일을 소홀히 하고 하는 소설이 만들어 진것이지요. 그가 자리를 비운사이 섭정왕 벨사살이 광란의 잔치를 벌이다가 고레스에게 정복 당했다라고 소설이 만들어지고 또 전해져 온것이지요
그럼 이제부터 왜 BC 539년으로 무대가 꾸며졋나를 추적해보지요
느부갓네살의 즉위 BC 606 에서 예레미야 70년을 빼면 BC 536 이 되지요
서울삼일교회 송태근목사 다니엘 강해 참조
대구장로교회 강세창목사 다니엘 강해 참조
인천사랑의교회 정동수목사 다니엘 강해 참조 침례교 세대주의
서울삼일교회 송태근목사 다니엘 강해 참조
대구장로교회 강세창목사 다니엘 강해 참조
인천사랑의교회 정동수목사 다니엘 강해 참조 침례교 세대주의
다니엘 6장에서 다리오에게 고레스가 왕으로 세워 주었다고 하니 그이전 3년전쯤에 바엘론을 다리로가 점령하고 고레스가 다리오를 BC 539년에 바벨론 왕으로 세워주고 3년후 BC 536에 고레스가 대왕이 되어 고레스 칙령의 조서를 내렸다로 추적된 역사가 정설로 굳어진것입니다.
그래서 고레스의 출생년도가 590 또는 576으로 검색하시면 불분명합니다.
BC 539로 하면 고레스 나이가 51세로 너무 많거든요 BC 576으로 해야 37세가 되어 어림직작이라도 맞게되지요
고레스의 출생년은 BC 590년이고 바벨론 정복은 BC 551년으로 고레스 나이 39세에 바벨론 정복후 왕이되었습니다. 그자리에 다니엘이 들고 나온것이 이사야 44장 26~28절 이었고 그것을 보고 고레스는 놀라서 하나님의 백성 유대민족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칙령을 내립니다
이사야 44장
26 그의 종의 말을 세워 주며 그의 사자들의 계획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에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는 고레스가 그곳에 오기전 150년에 기록된 문서이지요 그문서에 자신이 바벨론을 정복한 그방법이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왕이라도 그민족을 돌려 보내지 않을수 없었을것입니다. 다 하나님이 하신일입니다
1차포로 귀환이 이루어 졋지만 주변국들의 방해로 진척되지 못하다가 고레스가 530년에 죽고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할때 본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진압작전에 크세노폰이 용병으로 참전하게 되지요 그진압중에 캄비세스가 죽고 다리오1세가 반란을 진압하고 BC 522년 다리오가 즉위하게 됨니다.
그가 다른 호칭으로 아닥사스다 ( 아르타 크세르 크세스 = 의로운 영웅들의 지배자)
다리오 2년 (BC 520)에 성전기초가 다시 놓게되고
다리오 6년 (BC 516)에 성전이 봉헌되며
다리오 7년 (BC 515)에 에스라가 에루살렘에 올라가게되고
다리로 20년 (BC 502)에 느헤미야가 성벽을 52일만에 재건하지요
그래서 에스라 2장에 느헤미야기 돌아온 포로로 기옥됨니다
3차포로 BC 583 - BC 502 = 81년 포로시 나이를 더해도 100세미만의 노익장 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시더서의 기록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BC 576년 다리오62세 + 7년 = 다리오 69세 BC 569년 (아하수에로 ) 의 페르샤 왕비사건입니다.
모르드개도 고레스 칙령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오고 에스라 2장에 돌아온자로 기록됨니다
페르샤의 크세르 크세스는 BC 480년 때의 왕입니다.
메데 다리오는 아스티아게스로 느부갓네살의 매부이며 아내 아미티스 에게 공중정원을 만들어 준것입니다. BC 578에 짐승같이 되고 벨사살이 섭정왕을 하다가 자살골로 죽고 매부인 아스티아게스 (메데 다리오 62세) 가 바벨론을 통치하다가 다니엘 6장의 사자굴 사건이 나게되고
BC 571년 에 제정신이 돌아와서 다시 느부갓네살에게 바벨론을 넘기고 메데왕으로 복귀하기전에 와스디 사건이 있고 69세에 에스더를 왕비로 들이고 나이들어 죽고 아들에게 왕위를 넘기고 (고레스 외삼촌) 그의 딸과 혼인하여 메데제국도 합법적으로 물려받습니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BC 562년에 죽고 아들 에윌므로닥에게 다음엔 2년후 느부갓네살 사위에게 즉 처남 한테 암살되어 넘어가고 그는 4년간 통치하다가 죽고나서 아들에게 넘어가고 아마 그때에
고레스가 바벨론을 BC 551년에 정복하여 그 때부터 페르샤 제국의 왕으로 등극합니다. ( 크세노폰 기록입니다) 그리고 고레스가 나보니두스를 바벨론 봉신국 왕으로 세움니다.
이제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누군가 알아봅시다.
아하수에로(메데)나 다리오(페르샤)는 왕의 이름이 아니고 왕위의 또 다른 칭호입니다. 즉 메데사람 다리오(62세)는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이며 이름은 아스티아게스이며 고레스의 외할아버지 입니다. 고레스의 어머니는 만다네 입니다.
메데와 페르샤 바벨론 에서 각각 부르는 왕의 칭호가 동시대에 같이 나오게 되면서 역사가 혼란스럽게 연대기 오류로 해석되고 기록된것입니다.
크세르 크세스도, 아닥사스다도 (아르타 크세르 크세스) 이며 모두다 왕의 다른 칭호입니다.
메데에서는 아하수에로라부르고, 바벨론에서는 메데사람 다리오라 부르며, 페르샤에서는 크세르 크세스 더높혀서 아닥사스다라고 (아르타 크세르 크세스) 라고 불리운듯 합니다
예로 이집트는 바로 파라오, 블레셋은 아비멜렉, 에글론 야빈 이라부르지요.
이제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누군가 알아봅시다.
아하수에로(메데)나 다리오(페르샤)는 왕의 이름이 아니고 왕위의 또 다른 칭호입니다. 즉 메데사람 다리오(62세)는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이며 이름은 아스티아게스이며 고레스의 외할아버지 입니다. 고레스의 어머니는 만다네 입니다.
메데와 페르샤 바벨론 에서 각각 부르는 왕의 칭호가 동시대에 같이 나오게 되면서 역사가 혼란스럽게 연대기 오류로 해석되고 기록된것입니다.
크세르 크세스도, 아닥사스다도 (아르타 크세르 크세스) 이며 모두다 왕의 다른 칭호입니다.
메데에서는 아하수에로라부르고, 바벨론에서는 메데사람 다리오라 부르며, 페르샤에서는 크세르 크세스 더높혀서 아닥사스다라고 (아르타 크세르 크세스) 라고 불리운듯 합니다
예로 이집트는 바로 파라오, 블레셋은 아비멜렉, 에글론 야빈 이라부르지요.
에스더서 2장 6절 여고냐와 함께 잡혀갔으며 16절에 아하수에로왕으로 기록 되어있고
에스라 2장에 돌아온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비가 된것은 BC 569년으로 모르드개가 포로된지 30년째의 해이며 그에 조카이니 약 20세 전후에 왕비로 간택을 받은것입니다.
그이후로 일어난 사건이 하만의 사건이며 부림절 절기가 만들어 집니다.
모르드개가 고레스 칙령에 따라 에루살렘에 올라갈때는 포로후 48년후에 돌아와 에스더 2장에 돌아온자로 기록 되었습니다.
만약 페르샤의 살라미스(BC 479 ) 해전후의 크세르 크세스 시대라면 1차포로후 약 120년으로 모르드개 나이가 맞지를 않습니다.
에스더2장
5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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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구약성서의 역사기록의 끝은 에스더서가 아니고 에스더서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연대기를 역산을 해서 무리하게 해석하고 하나님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하신다고 하시면 안되는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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